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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택 이야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법인 등 다채로운 조직들이 사회주택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주택에 각기 다른 동기로 입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주택 현장, 함께 사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정글에서 사는 게 이것보다 낫겠다

 

사회주택명: 한지붕 독산점
운영기관: 한지붕협동조합
작성자: 고민주님

  

 

  

  나는 서울에서 버스로 꼬박 네다섯 시간을 가야 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처음 와 본 건 아주 어릴 때였겠지만 내 첫 기억은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다. 그때 이모가 데리고 가 줬던 명동 돈가스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서울은 나에게 신세계였고 별천지였다. 어릴 적부터 꿈과 포부가 크던 나는 중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살기를 원했고 그 꿈은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자마자 시작됐다. 중, 고등학생 시기를 거치며 친척 집에 방문하기 위해,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를 가기 위해 오갔던 서울이라 나름대로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동네인 마포구에 자리 잡고 싶어 신촌의 한 고시텔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서울에 살고, 지하철도 없는 우리 동네와는 달리 지하철로 편하게 어디든 다닐 수 있으며, 전시회부터 쇼핑까지 즐길 거리가 너무 많은 서울이 좋았다. 하지만 모든 일에 대가가 따르듯 서울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나는 그곳에 살기 위해 돈을 내야 했고 하기 싫어도 아르바이트를 멈추지 않아야 했으며, 집으로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 줄 사람 없이 나 혼자만의 생활을 꾸려야 했다. 서울은 차가웠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내가 기대고, 의지하고, 온전히 나만의 영역이자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좁고 열악하지만 자취방이자, 집뿐이었다. 모든 걸 내려 놓고 쉴 수 있는 곳,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곳. 집은 그런 곳이었구나, 집의 소중함과 집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으며 점점 지방의 본가보다 서울의 집에 내 집 같다고 느껴지고 있었다.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의 생활에 지쳐 해외로 잠시 도피 아닌 도피도 해 보며 어느덧 내 인생에서 고향보다 서울에 산 시간이 비슷해지는 연차가 됐다. 그렇게 지금까지 나는 10 개의 집을 거치고 이사를 한 끝에 사회적 주택, 지금의 사는 곳에 내 공간을 꾸리게 됐다.

 

  사회적주택에 오기 전 살던 집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처음 집을 구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어른의 도움없이 항상 혼자의 힘으로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맺었다. 그런 나를 무시하는 집주인도 있었고, 집주인의 편을 드는 부동산도 있었으며, 어린 나에게 덤탱이를 씌워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뜯어 내려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도 만났다. 발걸음 세 번이면 집이 끝나는 좁은 집에서도 살아 보고 햇빛이 들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가는 집에서도 살아 봤고, 방음이 전혀 되지를 않아 옆 집과 함께 사는 것 같은 집에서도 살아 봤다. 그렇게 살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도 많이 얻고, 부동산에 관련된 지식도 많이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적주택에 오기 전 집은 그 모든 노하우를 산산조각 낼 만큼 예상 밖의 문제들과 고통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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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낡고 오래 돼 곧 철거 후 재개발에 들어갈 집이었으나 안은 리모델링을 해 놓은 상태라 집을 둘러보며 딱히 사는 것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해외에서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함께 살던 내 친동생만 살 곳이 필요했고 지인을 통해 옵션도 다 있는 상태로 들어가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사는 것이 이득이었기에 그곳에서 살기로 결정을 하고 나는 한국에 들어올 때만 그 집에서 지내게 됐었는데 그런 나에게도 그 집은 쉴 곳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더니 내내 그 집에서 살아야 했던 동생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낡은 집이라 수도에 필터를 끼워 사용하면 물이 시냇물처럼 졸졸 나왔고, 필터를 빼자니 녹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걸 이미 필터를 통해 본 상태라 도저히 뺄 용기가 안 날 정도였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웠고, 보일러는 이제 수리도 안 될 정도의 노후한 모델이었으며 전기장판을 꽂아 쓰던 플러그는 전기가 과부화되어 플러그가 터졌었고 여름에는 바로 뒤가 산이라 책상에 앉아 있는 내 손등에 지네가 떨어질 정도로 벌레가 많이 나왔다. 오죽하면 집에 세스코를 불러 설치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네나 알 수 없는 벌레들이 꾸준히 나왔다. 살면서 그렇게 큰 지네는 그 집에서 처음 봤었다. 그 집에서 산 건 대략 1년 반. 중간에 내가 한국에 돌아오면서 나도 그곳에서 대략 1년을 살았고 더 이상은 여기에서 거주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집값은 오를 대로 올라 전세는 구하기 힘들고 투룸의 월세는 60만 원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비싼 보증금에 비싼 월세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찾으며 LH, SH 안 본 주택이 없을 정도로 찾다가 알게된 곳이 바로 지금의 사회적주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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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함께 지원하고 되기만을 기다리던 겨울의 어느 날. 통과가 되었다는 소식이 왔고 우리는 뛸듯이 기뻐하며 곧바로 2주 뒤로 이사하기를 결정했다. 당시에 하던 일만 아니면 일주일 내로도 이사를 가고 싶었을 정도의 상황이었는데 한 겨울에 노후한 아파트라 옆 통로에서 관리가 안 되던 수도가 터지면서 물이 끊겼고 일주일 가까이 변기 물도 안 내려가는 집에서 살았다. 생수를 수십 개를 주문해서 쓰고 친한 동네의 친구 집을 빌려 씻고, 지하철이나 근처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하며 정글에서 사는 게 이것보다 낫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사를 하게 되었고 따뜻한 물이 나오고 보일러가 멀쩡히 돌아가고 심지어 모든 게 새로 지어진 상태라 비닐조차 떼지 않은 깨끗한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너무 행복하고 너무 기뻐서 며칠이나 동생과 서로 따뜻한 물이 나온다며 기뻐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 본 글은 '사회주택 입주민 지원사업'에 참여해주신 입주민께서 작성해주신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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